내 행복을 좇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원래 없었던 건지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건지 살아지는 게 아닌 살아남으려 했던 삶 당신들 전부가 한뜻으로 그려낸 졸작 위에 추악과 나약을 매일 덧칠하고 또 덧칠하면서 구태여 소리 내어 말하는 일은 눈 먼 이가 빚은 도자기보다 어설프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하겠다 그래서 이곳에 적는다 불행에 잠겨 사지를 휘두르며 떠오르...
00 화장실 바닥은 늘 젖어 있었다 넌 그게 불만이었고 수도꼭지를 돌리면 한동안 쏟아지는 찬물 간헐적으로 퍼붓는 비 피 끈적한 물 뜨겁고 끈적한 물 핏자국 피 물 물자국과 온수가 나오면 밀어넣던 작은 머리통 또 다시 찬물 온수 찬물과 온수 그렇게 시리는 눈과 입 떨리는 어깨는 01 기록해두고 있다 기록해두고 있어요 기록해두고 있어요? 02 읽다 잃다 읽고 ...
내가 당신을 버린 적 없다 돌아서는 그 모습에도 입 한 번 벙긋한 일이 없다 내가 울음을 토한 적 없다 돌아오는 그 모습에도 눈 한 번 깜작인 일이 없다 지는 태양과 길어지는 그림자 그 틈바구니로 내 자신을 감추기 급급했고 온몸에 멍울지는 얼룩이나 헤아렸으며 언제라도 다할 숨을 무시하기만 했다 버리기엔 지나치게 다정하고 온전히 품기엔 거추장스러운 가득 찰 ...
어머니께서 서투르게 기뻐하셨다 두 눈동자의 껍질 위로는 한심함이 떠올랐고 모래알처럼 까끌거리는 미소는 어머니의 입꼬리에서 바스라졌다 퇴근 후의 집 안에는 매캐한 연기와 들큼한 향 노릇하니 구워진 카스테라와 늘어진 몸 어머니 앞에 한 쪽을 놔드렸다 보세요 채 다 드시지도 못할 것을 현관에 놓인 신의 주인에게도 그득 담긴 접시를 건넸다노릇하니 구워진 몸과 늘어...
새벽 엉망으로 벗어두었던 교복을 손에 들면 보이는 반쯤은 사라져버린 립스틱 입술을 지나 목덜미까지 내달리는 그 자국들 손등으로 문질러보아도 닦이지는 않았다 쉬이 지워버릴 수 없는 새벽 아침 아침이 힘들다고 말씀드렸어요 두 눈을 찔러오듯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눈물이 흘렀다고 얘기했어요 더는 멈추지 않는다고 운을 떼었을 때 당신은 나를 꾸짖었고 으깨버렸어요 미...
어차피 인간이란 존재는 제 눈으로 확인 가능한 것만을 기억한다. 눈을 감았다 떴다. 잔상. 필름 위에 남은 빛의 흔적처럼. 그것만으로 우리는 사건의 전말을 유추하고, 머릿속에 아로새길 수 있는가? 도리어 모든 것을 쉽게 잊을 뿐이다. 지나치게 열린 조리개는 사진을 엉망으로 만들기 쉽다. 내 눈이 그러했다. 선명히 보일 듯하다가도 흐릿한 모습들. 그가 내게 ...
존경하는 경관님, 우리가 한평생 다 바쳐 적어 내려가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계십니까? 우리의 두 눈알이 매일 밤마다 구르고 돌기를 반복하여 서로의 머리통 안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아십니까? 죄악이란 씻어내려 하면 할 수록 문신처럼 깊게 새겨진다는 사실을 아시나요? 그리고 그 각인이 뼈를 감싼 껍질을 뚫고 들어가 진피에까지 스며드는 것을 보셨습니까? 가장...
옛사람들은 이 언덕에서 악마를 죽였다.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악마라고 정의한 모든 것들을, 내가 두 발로 딛고 선 바로 이 언덕에서. 양팔을 잃은 노파는 날개가 뜯긴 벌레처럼 몸을 떨다 죽었다. 더 이상 처녀가 아니게 된 여자는 산 채로 배가 갈라져 죽었다. 갈 곳 잃은 개의 주둥이가 주먹만 한 바윗돌에 의해 으스러졌고, 동이 트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. 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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